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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구덩이 속 `장인 魂과 고집`으로 탄생하는 거창 鍮器

거창유기공방 이기홍 대표 "`본차이나` 능가 그릇 내놓는게 꿈"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6-12-12 08:53:34

거창유기공방 이기홍 대표 "`본차이나` 능가 그릇 내놓는게 꿈"


불구덩이 속 `장인 魂과 고집`으로 탄생하는 거창 鍮器


4대 걸쳐 100여년간 전통방식 주물유기 제작 고집한 `외골수` 

 


  
 
 
 
 

사진은 이 장인이 그릇을 깎는 `가질` 작업을 하고 있다.

 


이기홍 대표가 운영하는 거창유기공방은 거창군 남하면 가조가야로 308에 위치해 있다. 거창유기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주물유기 공방으로 이기홍 장인은 그 맥락의 큰 축으로써 대한민국 놋그릇 역사를 꿰고 있다. 

 

 

"우리 전통 유기를 계승ㆍ발전시켜 영국의 `본차이나`를 능가하는 제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거창군 남하면 가조가야로 308에 위치한 거창유기공방 이기홍 대표(63)의 꿈이다.


 

60이 넘은 나이지만 이 대표의 유기(鍮器-놋그릇)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은 남다르다.


 

임금님 식탁에서는 독을 가려내고 가정에서는 은은한 광택에 보온성과 중후한 멋을 드러냈던 놋그릇 유기.


 

구리와 주석을 합금한 놋쇠로 각종 기물을 만드는 유기는 쇳물을 틀에 부어 만드는 주물유기와 두드려서 만드는 방짜유기로 구분된다.


 

예로부터 놋그릇을 만드는 사람을 `유기장` 또는 `놋갓장`이라 한다. 구리에 아연을 넣은 주동(鑄銅)으로 만드는 유기를 `주물유기`라 하고, 아연대신 주석을 넣은 향동(響銅)으로 만드는 유기를 `방짜유기`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정치의 근간이 됐던 대법전 경국대전에는 `조선시대 한양에 모든 궁(宮)과 각사(各司:서울에 있던 관아의 총칭)에 예속된 장인(匠人)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장인은 병기(兵器) 및 귀족들의 장식품을 주로 만드는 경공장(京工匠)과 지방관아에 소속돼 농기구, 유기 등을 주로 만드는 외공장(外工匠)으로 구분했다.


 

조선후기 영조(英祖) 때의 실학자 유득공은 그의 저서 경도잡지에 `통상 놋그릇을 중요시해 일체의 주방 용기로 이를 사용하고 심지어는 요강이나 세숫대야까지도 놋쇠로 만든다`고 쓰고 있다. 살균력과 열 보존율이 뛰어나 밥그릇, 국그릇, 수저 등으로 쓰는 유기의 대표 주자는 거창유기다.
 

 

 

 
거창유기공방에서 만든 다양한 종류의 유기제품들.


 

 

60년대 초 거창지역에 13군데의 유기를 제작하는 공방이 있었다고 한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여러 지역에 유기공장이 더욱 많았던 것은 당시 연로로서 필수적인 목탄은 습기 없이 오래 보관이 어려워 큰 산 주변의 충분한 숯 공급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13군데의 유기공방 중 오직 거창유기만 현존하고 있다.
 

거창유기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주물유기 공방으로 이기홍 장인은 그 맥락의 큰 축으로써 대한민국 놋그릇 역사를 꿰고 있다.
 

일제시대의 놋그릇에서부터 6ㆍ25전쟁 그리고 60년대 놋그릇의 몰락과 80년대 놋그릇 명성의 회복부터 지금까지의 놋그릇 시장을 모두 겪고 살아남은 유기공방은 극히 드물며, 현존하는 명망 있는 놋그릇 제작 공방 중에서는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유구한 역사의 흔적으로 거창유기는 다양한 작품 내용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놋그릇의 변천사와 궤를 같이한다.
 

식기 크기의 변화와 제품 가격의 변화, 놋 제품에 대한 시장의 관심과 수공예 제품의 제작 방법과 합금 방법의 변천사까지 이를 다 포괄해 이기홍 장인은 그 중심에서 다양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한국 문화 연구에 충분한 기여가 가능하며 학술연구 자료로서의 그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거창유기공방 전경.


 

 

거창유기공방은 어떤 곳인가

 

구리와 주석의 합금인 청동으로 만든 그릇인 鍮器(놋그릇) 흔히 유기는 변색이 잘 돼 자주 닦아줘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지만, 요즘 생산된 제품들은 녹이 잘 슬지 않고 광도 잘 난다.
 

유기는 이른바 망치로 두드려 만드는 `방짜유기`로 일컬어지는 단조유기와 거푸집에 쇳물을 부어 만든 `주물유기`로 구분된다.
 

거창유기는 거창읍 서변리 655번지에서 고(故) 이현호 옹(1922~1995)이 의부(義父)인 고(故) 김석이 옹(1886~1954)으로부터 전통유기주물기법을 전수받고 아들 이기홍(1954 ~현재) 대표와 손자 이혁에게까지 전수시켜 4대에 걸친 약100년 가까이 주물유기 제작의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한 우물을 파고 보존ㆍ전수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2006년 개봉됐던 영화 `음란서생`과 2007년 TV드라마 `왕과 나`에 등장한 각종 유기 소품들이 모두 이 공방에서 만들어진 제품들이다.
 

1950년대 초 거창유기는 물건을 잘 만든다는 입소문을 타고 전성기를 맞는다. 직원도 10명으로 늘었다.
 

그렇지만 1960년대 중반에 스테인리스와 멜라민 등으로 만든 가벼운 식기가 나오면서 공방은 위기를 맞았다.
 

어려운 가운데도 이 대표는 불교용품을 조금씩 만드는 등 유기 제작에 손을 놓지 않았다.
 

이 대표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브랜드 전략으로 승부를 걸었다.
 

비닐이나 신문지에 말아서 팔던 유기를 이름이 새긴 종이박스에 담아 팔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 이에 힘입어 매출이 껑충 뛰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1999년 화재로 공방이 잿더미가 됐다.
 

그는 "친구와 지인들의 도움으로 공방을 재건했는데 거짓말처럼 장사가 잘 돼 3년만에 빚을 다 갚았다"고 회고했다.
 

급격한 산업화 속에서도 거창유기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은 전통 주물기술을 지키는 숙련공들 덕이다.
 

거창유기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각각 ▲불을 다루는 `부질` ▲그릇을 깎는 `가질` ▲연마작업 등 자신의 분야에서 철저한 개인작업을 통해 완벽한 제품을 생산한다.


 

 


 

 

유기 예찬론자…전통유기 발전에 기여

 

 

이기홍 대표의 유기예찬론을 들어보자.
 

이 대표는 "유기는 살균 및 소독력이 뛰어나 음식을 담으년 대장균과 비브리오균이 99%이상 죽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또한 보온과 보냉 기능도 탁월해 음식을 담으면 음식에 어울리는 제 온도에 맞게 식사를 할 수 있다"고 유기의 장점을 설명했다.
 

이 대표는 이처럼 좋은 장점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유기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많이 퍼져 널리 쓰이지 못하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이 대표는 두드려 만든(단조) 이른바 `방짜유기`만이 전통 유기인 것 처럼 알려진 것을 지적했다.
 

이 대표는 "청동 가공기술의 역사를 보면 주물이 단조보다 오래된 기술이고 단조로 만들 수 있는 유기는 징이나 대야 수저 정도"라며 "특히 소형인 밥그릇 등 작은 제품은 망치로 두드려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해 프레스 등으로 찍어 생산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를 두고 방짜유기라고 선전하는 것은 문제"라도 꼬집었다.
 

이 대표는 "거창유기 제품은 구리 한근과 주석 넛냥 닷돈의 최상의 재료를 엄선해 방짜 전통주물방식 그대로 재현하는 수제품이다"며 "거창 유기는 기계가 아닌 장인의 손으로 제대로 된 유기그릇이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이 대표는 일상생활에서 접하기 쉬운 보급형 유기 외에 고급 공예물이나 장식물 등 작품활동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전통주물유기의 제작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이기홍 대표는 현재 모든 제작 과정이 기계화 되어 있는 단조유기 대신 전통 제작방식에 의해 제작되고 있는 주물유기 제작 방법을 고수해 거창 유기의 전통 제작과정을 잘 보유하고 있다.


 

이로 인해 거창유기는 1924년 공방 개설 이래 경상남도와 대한민국 놋그릇 발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1991년 제16회 전승공예대전에서 입선 이후 2014년까지 23년간 제34회의 경상남도와 대한민국 공예 전시회 수상, 22회의 경상남도 추천 상품 지정 및 공예품개발 장려업체 지정, 그리고 제1회 명품 장수기업인 지정 및 표창ㆍ위촉 19회 수상은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003년 전국 공예품 경진대회에서는 약 6만 5,000대:1의 경쟁을 뚫고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경남도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타임캡슐 경남 1996`의 경남의 상징문물 100종에 포함돼 함께 매설돼 있는 등 과거부터 현재까지 경상남도를 대표하는 놋그릇 장인으로 손색이 없다.
 

이미 거창유기 작품들은 전통의 아름다움으로 인정받고 있다. 작품의 기능성 또한 관리가 쉽고 제품이 깨끗하며 완성도가 높기로 평가 받고 있다.
 

특히 깊고 오묘한 고전미와 세련되고 편리한 현대감각의 조화를 추구해 현대인들에게도 전통유기가 재인식되고 사랑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놋쇠를 주방용기에 사용해온 독특한 문화를 영국의 본차이나 제품이나, 북유럽의 은 세공품, 말레이시아 아랍권의 주석제품에 견줄 수 있는 우리나라의 전통유기를 세계화 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 대표는 가업을 이어가며 유수한 유기장들을 전승ㆍ배출ㆍ발굴해 현업에서 활동 중이어서 지역 및 대한민국 전통유기 발전에 기여하는 바 역시 크다.
 

이 대표는 "영국의 도자기 제품인 `본차이나`는 한 세트에 1억원이 넘는 것들도 많다"면서 "틈틈이 작품 제작에 전념해 본차이나를 능가하는 세계적인 그릇을 세계시장에 내놓고 싶은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1922년 거창읍 서변리 655번지에서 뿌리를 내린 거창유기는 지금 거창군 남하면 가조가야로 308번지에 `거창유기공방`이라는 이름으로 문하생 10명이 거창유기 주물기법을 열심히 전수받고 있다.
 

4대 계승을 위해 지난해부터는 서강대 기계공학과를 나온 아들 이혁씨가 승계를 위한 전수를 받고 있는 중이다. / 박형인 기자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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